오시마 나기사감독과의 인터뷰

나는 관객들에게 감각으로 포장된 삶을 계속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Q : <열정의 제국>을 어떻게 생각하시게 되었습니까?

A : 사실 이 영화는 <감각의 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이 만든 작품과의 연결고리에 답하고 전작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은 감독의 입장에서는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감각의 제국> 제작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1976년 말에 이르러 '이토코 나카무라'라는 낯선 작가가 나에게 자신의 책을 보내왔다.
당시 나는 무수히 많은 책을 받았다. 일부는 나에게 평을 써주길 바라는 신간이었고 일부는 자비로 이미 출간한 책들이었다.
때때로 난 그것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 작업이 다시 시작되면서 그 책들은 잠시 치워두었다.
새 영화의 시나리오가 잘 되지 않아 고민하는 중에 그 책들을 다시 보게되었다. 그 중에 나를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타카시 나카슈카, 땅을 일군 3代'. 나는 타카시의 명작인 '땅'을 몇 달 동안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이름모를 작가의 편지를 읽었다. "나는 <감각의 제국>을 만든 감독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리라 확신합니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일본의 그 어두운 역사 아래서도 사랑은 존재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많은 오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일도 제쳐두고 도와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메시지는 나를 깊게 감동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원고를 정식으로 읽기 시작했다.

Q : 그렇다면 당신은 그 글을 얼마나 변형하고 영감을 얻었나요?

A : 무엇보다도, 이토코 나카무라는 타카시 나카슈카의 충실한 상을 그리려 노력했다.
그녀는 혼잣말로 '내가 아니면 이 글은 완성될 수 없어'라고 되뇌이곤 했다.
물론 그녀는 1879년에서 1915년까지 살다간 그 위대한 작가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를 잘 알았고,
그녀에게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삼대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시킨 그 소설은 대하 드라마였다.
이토코는 타카시를 신비한 천재가 아니라. 섬세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재 작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기사부로라고 하는 어느 가난한 인력거꾼의 살인 사건을 포함시켜서 이 전기를 풍부하게 만들어 내었다.
그 사건은 1896년 2월 20일 밤에 일어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후에 그 지역에 경찰관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해 자주 들었다.
그녀에 따르면 나카슈카는 자신의 집 가까이에서 일어난 이 일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소설로 쓰려고 했지만, 그 일을 완성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위해 이 사건을 면밀하게 다시 조사했다.
나는 그녀가 작성한 사건 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보고서는 분명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그 암울한 역사 아래에서도 사랑은 존재했다." 똑같은 세상에서 단지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단지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생각하면서 난 특별한 기분에 젖어 들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인력거꾼 살해범 이야기를 내 시나리오 일부분에 도입할 것을 생각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그 주인공이 나의 마음을 점점 더 사로잡아 그들의 이야기만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에까지 미쳤다.
결국 나는 이토코 나카무라에게 편지를 썼고, 그녀도 이에 동의했다.

Q : <감각의 제국>과 <열정의 제국>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습니까? 혹시 새 프로젝트나 그것을 발전시킬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아닙니까?

A : 똑같은 영감을 두 번 이상 사용하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신이 언급한 연결 고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감각의 제국>처럼, 이 영화는 강렬한 성적 충돌을 안고, 일상의 삶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목매어버린 다양한 형태의 군상들만큼 내게 흥미로운 주제는 없다.

Q : 당신 영화의 초자연적인 요소와 전통적인-일본의 유령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A : 전통적인 일본 예술에는, '카부키' 또는 '코단'같은 유령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 이것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기원되어 우리에게 전해졌고, 원한에 대한 복수 이야기의 기본 골격으로 사용되어왔다.
반면에 내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은 다르다. 그 유령은 일본인들이 보존하고,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시켜 내려온 민화에서 기원했다.
이것은 진실로 평범한 유령이어서, 무대나 영화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처럼 세키와 토요키에게 그 유령은 결코 환생의 산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의 관객들은 유령을 상상의 산물로만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대비해서,
난 특별한 방식을 채택해야했다. 예를 들어, 육체적 사랑에 대한 장면을 더욱더 세밀하게 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Q : 외부세계와 내부세계가 연결되는 통로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인 낡은 우물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일부가 전개됩니다.
환상과 현실이 만나는 상징적 공간을 의도하셨던 것인가요?

A : 내가 22살에 썼던, 나의 첫 시나리오는 '젊음의 심연에서' 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모두 거기 있었고, 항상 거기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 낡은 우물의 바닥에, 당신이 이 우물 아래로 무언가를 던진다면, 아마도 당신이 대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만일 두 연인이 영화 종결 이전에 우물 아래로 내려간다면, 그것은 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낡은 우물의 바닥에 있다"

Q : 왜, 토요지의 동생 덴조는 바보인가? 일단 '혼란과 정열' 이 휘몰아치고 사라진 다음, 빈 마을에 혼자 버려진 '백치'의 시선으로 영화를 끝내려는 것인가?

A : 요즘에, 정부는 '백치'들을 정신병원에 가두어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들은 길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동물이 동물끼리 지내듯이 사람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백치가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옛 일본 동화의 전통에는 화자가 노파이다.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노파, 그 주름이 마치 땅에 패인 고랑만큼 갚은...왜냐하면 땅은 이 동화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Q : 세키와 토요지 관계에서 오이디푸스적 특성은 그 청년이 세키의 젖을 먹고 있던 아기를 밀치는 장면에서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감각의 제국> 시절, 당신은 관객에게 어떠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남겨두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당신의 태도가 변화되었는가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영화들이 다른 사람들의 작품보다 무의식의 세계에 더 깊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A : 나는 단지 내가 말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다.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내 영화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세계를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세키와 토요지 같은 사람들,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살다 죽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는 스스로를 확인한다.
나는 내 자신이 그들에게 가장 가깝다고 느낀다.
만일 그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무의식'에 가까운 것이라면, 나는 당신의 분석을 받아들였다.
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자신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해석에 구애받진 않고, 투사한 것이지 않을까 궁금하다.

Q : 세키가 눈이 멀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죠? 오이디푸스 신화의 또 다른 인용인가요?

A : 그것이 세키에 대한 기사부로의 벌이라고 가정하는 것인가? 혹은 사랑에 대한 증명?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보지 않고 삶을 사는 것은 불행하지 않겠는가?

Q : 기사부로의 시체가 드러났을 때, 잠시 동안 세키가 그녀의 시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요?

A : 세키가 기사부로를 보았냐는 질문인가? 관객들은 그녀가 시체를 보았냐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그녀가 본 것 같다.

Q : 왜 토이지가 마을에서 혼령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되었죠?

A : 어떻게 그가 그것을 보지 못했겠는가? "쿼바디스 도미네(신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질문이 그 답이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시대를 불문한 질문이다.

Q : 법의 대표자인 호타 수사관은 특별히 우스꽝스러웠어요, 당신은 그를 농민으로까지 위장했는데,
그가 전통적인 일본의 코믹 캐릭터인가?

A : 나는 항상 경찰 역할에는 우스꽝스러운 특징을 가진 배우를 기용한다. 나에게는 정부가 이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자가 더 우스우면 우스울수록, 정부는 황당하기 마련이다.

Q : 초자연적인 존재가 드러나는 장면은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됩니다. 어떻게 이러한 효과를 생각하고 연출했나요?

A : 나는 '특수효과'를 연출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단순'하다고 말했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혼령은
우리의 전통 예술에 종말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했던 환영들과는 달리 매우 소박한 유령이다.

Q : 당신은 촬영감독에게 독자적인 여지를 부여하나요, 아니면 특별히 원하는 이미지를 지시하는 가요?

A : 내가 나의 스텝과 배우들에게 말로 지시를 하느냐고? 내가 팀을 구성할 때, 나는 그들 자신의 스타일을 보고 선택한다.
그들은 나의 글을 읽고. 그들의 재능을 그 이야기의 요구에 맞게 조정한다.
이러한 동의와 조화가 말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스탭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자유롭게 발휘하길 바란다.

Q : 왜 또다시 프랑스와 공동 제작했죠?

A : 나는 특별히 국제적인 형태로 작업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감각의 제국>의 경우, 나에게 일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주었다.
아니톨레 다우만과 공동제작한 <열정의 제국>은 전세계와 인류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Q : 당신은 1969년에 "섹스와 범죄는 인간의 가장 폭력적인 충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충격적이었는데요...혹시 이 방향으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A : 나는 나의 첫 영화를 만든 이후 몇 년 사이에 감독으로서 나 자신이 두 주제에 마음 깊이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섹스와 범죄> 이후, 나의 영화는 이 주제들을 매우 분석적으로 취급했다. 지금 나는 관객들을 섹스와 범죄의 철저한 리얼리티를 경험하게 할만큼의 수준에 올랐다.

Q : 당신은 연출을 시작할 때, 모든 미학을 파괴하길 바란다는 것을 인정했었죠,
이제 당신은 어두운 배경 위로 불꽃을 대비시키는 독특한 자신의 미학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에게서 느낀 정열을 비유적으로 나타난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 자신의 창조적인 작업을 암시하는 것인가요?

A : <일본에서의 밤과 안개>같은 나의 초기 시절, 몇몇 평론가들이 그들에게 내 작품을 특징짓는 한 장면을 지적했다.
그림자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이 불꽃은 캐릭터의 삶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나는 이 격언을 좋아한다. "심연의 물고기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빛나고 나서야 빛을 발견한다"

 

 

(이 글은 1978년 5월 'POSITIF' 206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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