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문제작 메이커(글-스가누마 마사꼬)

1. 상영중단 사건으로 독립선언

<일본의 밤과 안개>(60년)는 어떤 정치운동가의 결혼식 피로연에 모여든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시종 격렬한 정치논쟁이 롱샷으로 전개되는 야심적인 토론드라마이다. 특히 감독 자신이 학생시절에 체험했던 일본공산의 관료적인 체질, 그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비판이 통렬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곡절도 많아서 개봉 4일째에 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위원장이 우익 소년에게 참살당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제작사 쇼치쿠가 돌연 상영을 중단해 버렸다. 흥행은 지극히 보통 성적이었으니까 살해사건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중단되었고 그 깊은 내막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며칠만의 상영으로 막을 내리게 된 사실에 격노한 오시마 감독은 "나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 바보들"이라며 쇼치쿠를 떠나버렸다.

그 무렵 외국영화를 보면 프랑소와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끌로드 샤브록 등이 누벨바그로 불리었던 시대, 오시마 감독도 일본 누벨바그의 기수로서 명쾌한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오시마였으니 필경 한 영화사 안에서만 썩고 있을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2. 찬란한 뉴웨이브의 기수

오시마 감독의 데뷔는 눈부실 정도였다. 1932년 3월 31일 교토에서 태어난 오시마 감독은 쿄토대학 법학과에 진학,
연극과 학생운동에 빠져들어 교토부 학생연합의 위원장까지 맡고 54년 쇼지쿠오후나 촬영소에 조감독으로 입사(동기로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의 야마다 요지 감독이 있다.)했다.

조감독 생활 5년만에 이례적으로 발탁되어, 비둘기를 파는 소년을 충격적으로 묘사한 <사랑과 희망의 거리>(59년)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 작품은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해, 같은 비둘기를 몇 번이나 팔고 있는 가난한 소년과 부자인 소녀의 교제를 통해 현대사회의 밑바탕에 숨겨져 있는 계급적인 단절에 절망한다는 충격적인 내용. 특히 소년이 비둘기를 사살한다는 강렬한 라스트 씬과 영화작가의 탄식이 스크린 곳곳에서 신음처럼 들려오는 멋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1960년의 미일 안전 보장조약에 반대하는 '안보투쟁'이 한창일 때 개봉된 두 번째 작품 <청춘잔혹이야기>(60년) 역시 젊은 세대의 강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젊은 남녀가 쯔쯔모다세(아내를 딴 남자와 성관계를 맺게 하고 남편이 그것을 미끼로 그 남자에게서 돈을 긁어내는 사기행위)라는 범죄행위를 행한다. 피해자를 가장한 자가 실은 가해자이고 가해자라고 생각한 자가 진짜 피해자로 된다는 역설적인 테마로, 파멸해가는 젊은 남녀의 잔혹한 청춘을 묘사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현대사회의 비인간성과 퇴폐의 깊이가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다.

세 번째 작품이 <태양의 묘지>(60년). 오사카의 슬럼가-사회의 가장 저변에 사는 인간들의 생활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묘사했으며 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의 심층을 도려낸 에너지가 대단했다.

그리고 네 번째 작품이 <일본의 밤과 안개>인데 겨우 네 작품을 발표하고 쇼치쿠를 뛰쳐나와 프리가 된 오시마 감독이었지만 그의 창작의욕은 더욱더 왕성하고 충실해져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눈으로 작품을 계속 촬영하게 된다.

일본의 친황제로 통하는 지배구조와 인간들의 전쟁책임, 그리고 그 무책임함을 집요하게 추구한 <사육>(61년), 또오리마(순식간에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악마 또는 악인)에게 당한 여자의 삶의 모습을 통해 범죄=혁명의 구조를 추구, 진짜 혁명가는 대중을 범하는 '마'라는 정의를 낸 <백주의 악마>(68년), 사형수인 조선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 범죄, 국가, 민족에 대한 개념을 뒤엎어가는 <교사형>(68년), 부권상실과 반국가 사상을 융합시킨 <소년>(79년)이나 <의식>(71년) 등 커다란 테마를 사회에 내던져왔다.

3. 예술과 외설의 기로

개성적이고 센세이셔널한 화제에는 빠지지 않는 오시마 감독이었지만 그 빛난 재능도 막다른 길목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마침 그때 오시마 감독의 재능에 눈을 돌린 프랑스의 명제작자 아느토르 도만은 그에게 포르노 영화를 맡기는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방황하던 오시마 감독은 흔쾌히 이 기획을 수락하고 3년간의 침묵 끝에 <감각의 제국>(76년)을 완성시켜, 훌륭하게 컴백했다.

일본의 연애사 중 가장 센세이셔널한 실화사건 '아베사다'사건(1936년)을 소재로 해 남과 여의 화려한 사랑과 투쟁의 모습, 쾌락의 극치를 밝고, 명쾌하고, 부드럽고 격렬하게 탐미적인 영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제30회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주간 오프닝작품으로 상영되어 대단한 반향과 절찬의 박수를 받았다. 남자가 영원히 자긴의 것이길 바라면서 남자의 음부를 도려내 지니고 다녔다는 지극히 특이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영화로 전세계에 개봉되었으므로 일본에서는 역수입된 셈인데 대폭적으로 수정이 가해졌고 또한 오시마 감독과 시나리오책을 출판했던 출판사 사장이 외설죄로 기소당했다. '감각의 제국 재판'은 장장 7년에 걸쳐 계속되었고, 외설성의 판단기준과 사회통념의 변화에 따라 결국 1982년 6월 9일 무죄선고를 받았다.

4. 변치않는 오시마를 위하여

<감각의 제국> 재판이 계속되면서 그 사이에 오시마 감독은 아나토르 도만 제작자와 손잡보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완성했다. 1978년의 <열정의 제국>. 이 작품은 동년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도 1896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것. 인력거 차부의 아내가 젊은 애인과 밀회를 거듭한 끝에 남편을 살해하지만 결국 남편의 망령에 사로잡혀 죄를 자백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옛날 일본 농촌을 배경으로 사랑과 빈곤에 허덕이는 인간의 슬픔을 응시하는 오시마 감독만의 개성이 전편에 넘친다. 물론 <감각의 제국>과 함께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로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영화라는 명목으로 유려한 포르노그래피를 발표한 오시마 감독에게 다음은 영국의 제작자 제레미 토마스(<마지막 황제> <하늘의 안식처> 등을 제작)가 눈독을 들여 <메리크리스 마스, 미스터 로렌스>(83년)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하의 자바에 있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영국군의 영웅적 포로와 아직 무사도 정신을 지니고 있는 수용소장들과 일본군인과의 대립과 그 갈등을 넘어 어느 틈엔가 호모섹슈얼한 우정을 교류한다는 남자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드라마다.

여러 가지 쇼킹 소재를 들고나온 오시마 감독은 86년 미녀와 침팬지의 불륜을 묘사한 <내사랑 막스>를 발표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