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이 리뷰 :
 

전에 해피 투게더가 퀴어 시네마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벌인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아니라고 말했다.

"왕가위가 이건 동성애자의 러브스토리라기 보단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고 말했기에."

여기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왕가위는 퀴어시네마란 단어자체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왜냐구? 따로 구분할 필요두 없는것이기에.

동성애자들두 일반적이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또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왕가위는 게이들에 대해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들도 헤테로섹슈얼들이 그렇듯 격심하게 싸우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동시에 사랑한다.
조나단 드미의 필라델피아가 동성애자들의 러브씬을 보여주지 않아
그들의 삶을 왜곡하고 있단 비난을 받았는데

우리의 왕가위는 이런 실수를 보여주지 않는다.

바로 초반부에 그들이 애널섹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다지 진부적이거나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게다가 동성애자들이 극심한 외로움을 느낄 때 응밀히 만나는 극장과
화장실의 모습까지 모두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그들의 삶이다.

이후에 보여지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두 연인의 모습.
따스하게 체온을 느끼며 탱고를 추는 양조위와 장국영...

여기서 장국영은 극심한 애정결핍으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게이의 역을 하고 있으며 양조위는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주는 역을 맡고 있다.
언제나 용서하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순수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의 조건을 보며 저울질할 때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오히려 돌팔매질 당하는 삶을 선택하며
상대를 사랑하는 건 그래서 더 순수하지 않겠는가!

이같이 모든걸 바쳤음에도 상대는 정착해주지 못하고 떠나간다.

이제는 기력을 잃고 양조위가 할 수 있는건 조그만 뗏목위에서 표류하며 흐느끼는 것.

그러나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건 왕가위가 늘 보여주는 엔딩.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장진은 쉽게 양조위에게 다가설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녹음기를 주며 당신의 슬픔을 묻어 버리라고 한 후 떠나간다.

세상의 끝, 여기서 장진은 녹음된 양조위의 조그만 흐느낌을 듣게 된다.

아마 그건 상처받고 방황하는 모든 영혼의 울음을 대변하는 것일듯.

양조위는 장진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 찾아간다.

모두가 엇갈린 이 세사람. 결코 해피엔딩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돌이켜볼 때 해피 투게더만큼이나 낙관적인 왕가위 영화가 있었던가!

양조위는 지하철안에서 "해피 투게더"의 감동적인 리듬에 자신을 맡긴다.
왕가위의 말마따나 모두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낼 듯이 감동적인 순간이다.

살아만 있어준다면 언제고 다시 원하는걸 찾을 수 있기에.

의미심장한 제목인 모두 함께 행복한.

이성애자들과 더불어 성적소수자들도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그런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Yeseule's
HAPPY TOGETHER Tribute
슬이의 해피 투게더 트리븃